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비아 드루실라 (문단 편집) == 성격 및 평가 == 당대 사람들과 [[플라비우스 왕조]]의 [[도미티아누스]] 시대 역사가 겸 원로원 의원 [[타키투스]]의 공통된 평가에 따르면, 리비아 드루실라는 '''보수적인 어머니이자 여장부'''였다고 평가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황실 권력의 어둡고 잔인한 면모도 갖춘 악녀로도 세간에 비춰졌다. 리비아 드루실라는 젊은 시절부터 상당한 외모를 가진 미녀였고, 부유한데다 성격적으로는 양친 모두 명문가 출신답게 출신가문들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했다. 이는 공화정 후기, 원수정 초기의 최상류층 로마 귀부인들과 비슷한 부분이었는데, 그럼에도 놀라울 정도로 교양이 풍부했으며 곱게 자란 명문가 출신답지 않게 의지력도 엄청 대단했다. 하지만 리비아는 동시대 또래 여인들이나 의붓딸 율리아, 손자며느리 아그리피나 등과 달리 사생활적으로 애인을 두거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여러 원로원 의원들과 패거리를 만들고 스폰서 형태의 그 비슷한 관계조차 맺지 않을 정도로 보수적이었다. 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아내였던 풀비아[* 첫 남편은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두 번째 남편은 쿠리오, 마지막 남편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였다.], 선동정치가 클로디우스의 누나이자 기원전 60년 집정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켈레르]]의 아내 클라우디아 테르티아[* 리비아 드루실라의 혈통적 본가인 클라우디우스 풀케르(클로디우스 플크루스) 집안 출신이므로 리비아와는 혈연상 친척이다.] 등 공화정 말 영향력이 상당했던 여걸들처럼 꽤나 활동적인 것 같으면서도, 이미지와 달리 놀라울 정도로 상냥하면서도 가정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리비아는 젊은 시절부터 손수 아이들을 양육, 훈육했던 전통적인 어머니이기도 했다. 이런 까닭에 당시 로마인들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이탈리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가부장적이고 절대적인 아버지의 전형이었던, 남편 아우구스투스는 그런 아내를 내전 당시부터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이며 모사꾼으로 생각했고, 로마 세계의 일인자가 된 이후에도 실제로 많은 부분의 결정에서 그녀의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타키투스는 리비아를 "가정적인 부분에서는 구식이었고 구세대 로마인 여성답지 않게 상냥했다"고 말했는데, 당시 로마인들도 리비아를 마찬가지로 생각했고, 로마와 이탈리아 일반 평민들은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아우구스타였던 리비아 드루실라의 보수적이면서도 가정적인 스타일에 열광했다. 따라서 원로원과 상류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이탈리아 내 로마인들은 그녀를 전통적인 로마인 가정의 어머니로 봤다. 또 타키투스로 대표되는 이들은 그녀에 대해 "명민한 남편과 냉담하고 매정한 아들을 두고 있음에도 한 가문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로 모범적이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리비아 드루실라는 동시대와 후세 로마인들에게 전제적인 어머니로도 유명했다고 한다. 이 뜻은 그녀가 여타 로마인들의 눈으로 봤을 때 집안에서 가부장 못지 않은 권한과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아내에게 굉장히 보수적인 로마의 가부장답지 않게 많은 특권들을 부여해줬고 리비아는 이런 권한들을 적극 활용했다. 이외에도 그녀는 타고난 머리 회전과 명민함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엄청난 수준의 참을성과 과감성, 그리고 의지력과 관대함에 대해서 매우 높게 평가받았다. 사실 그녀의 남편 아우구스투스는 절대권력자가 된 이후 좋은 부분이 강조되고 많이 신격화되었다고 해도, 여성편력과 바람끼는 친딸 율리아만큼은 아니어도 양부 카이사르와 비슷할 정도였다. 따라서 그는 리비아와 재혼한 직후부터 친구 마이케나스의 아내 테렌티아를 정부로 뒀고, 미소녀들을 데리고 수 많은 바람을 피웠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리비아는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싫은 티를 낸 적이 없었고, 늘 남편과 사이가 좋았다. 따라서 아우구스투스와 그 일가에 부정적인 사람들조차도 리비아 드루실라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명민함, 참을성을 인정하면서 그녀가 아우구스투스의 여성편력을 견딘 것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반면, 리비아는 오늘날 드라마, 영화, 소설 등에서 알 수 있듯 악녀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렇게 평가받은 가장 큰 이유는 이 당시 오직 리비아가 가지고 있었고, 그녀만이 남편에게 보장받았던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실(카이사르 가문) 내에서 누린 수 많은 특권들과 로마 최초의 아우구스타라는 직위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 외에도 리비아는 실제로 자신의 명민함과 정치적 감각 등을 두 아들과 손자들이 아우구스투스의 모든 지위와 특권을 물려받는 것에 집중했다. 또한 리비아는 다른 귀부인들과 달리 모임에서 패거리를 만들기 보다는 본인의 명민한 두뇌, 정치적 감각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본인의 능력을 활용해 눈칫껏 행동하는 아우구스타였다. 즉, 손자며느리 대 아그리피나, 증손녀 소 아그리피나와 달리 파벌을 만들어 뭔가 일을 꾸미기 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지위를 통해 힘을 행사했던 사람이었다. 따라서 살아있을 당시부터 악녀 이미지를 반대파들에게 얻었고, 후대인들에게 이런 행동들은 영악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게 됐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당대부터 리비아 드루실라는 황실 내 분쟁과 모든 음모가 언급되고 거론될 때마다 [[만악의 근원]] 내지 흑막으로 의심받았고, 아들 티베리우스 시대가 열린 무렵에는 "아들의 빠른 즉위를 위해 남편을 독살했다"는 둥의 도시괴담 이야기의 흑막 내지 모든 악행을 저지른 악녀라고 평가받게 됐다. [[분류:로마 황후]][[분류:아우구스타]][[분류:아우구스투스 영묘 안장자]][[분류:기원전 58년 출생]][[분류:29년 사망]][[분류:로마 출신 인물]][[분류:로마 제국의 고대 로마 다신교 신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